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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 복무1907년 군대 해산 후 의병 활약친일파 처단·무기노획 등 투쟁 공주재판서 교수형 선고됐으나경술국치 '합방대사령'에 석방1919년 세교리 장터서 만세시위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1907년 후기의병에 참전해 뛰어난 전공을 쌓았고 1919년 3·1운동 당시 고향인 충북도 청원군 북일면(현 청주시 내수읍)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한봉수 의병장은 어려서부터 사격과 사냥에 남다른 자질이 있었다고 한다. 자질을 살려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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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9.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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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스스로 동학군 참가1898년 육군무관학교 입학해각종 군사 기관서 장교로 활동1909년 부명학교서 인재 육성군무부 참사로 독립군 양성광복군서 활동하며 항일전 지휘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충청일보 배명식기자] 황학수 선생은 대한제국 군인, 만주 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에 몸 바친 '참군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몽호(夢呼)이며, 1879년 서울 화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1884년 충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대전리 삼화동으로 내려와 살게 됐다. 삼화동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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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9.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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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옥산면 덕촌리 출생독립협회·유신당 활동 참여덕신학교 세워 인재 양성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 개설1908년 '해조신문'창간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정순만 선생은 이승만·박용만과 함께 독립운동계의 '3만'으로 불리던 인물로 이승만, 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 창립에 참여했다.선생은 충북도 청주시 옥산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1896년 전기의병 참여를 시작으로 민족운동의 길에 나섰다. 이후 독립협회에 참여해 개화계몽의 길을 걸었고 유신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고향에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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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2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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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늑결에 의병 투쟁 전개 결의군사 이진하·중군장 김규철 등 의진 정비경북 영주군 순흥면서 적 탄환 맞고 순국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이명상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 당하자 의병을 조직해 호좌의진 이강년부대의 청풍 단양 장의장으로 활약한 후기 의병장이다. 그는 충북도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출신이다. 가족관계나 어린 시절 등은 자료 부족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조약의 무효화를 위해 의병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거의했다. 단양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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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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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성암… 충북 청주 출신신민회 가입해 주권수호운동만주서 경학사·신흥학교 설립1912년 상해서 동제사 가입임시의정원 충청도 대표 선출'조선지혈'에서 기자로 활동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이광 선생(사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원, 임시정부 북경주재외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호는 성암(星巖)으로 충북 청주 출신이다. 1894년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에 입학했으며,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905년 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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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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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교현동서 출생김봉원 권유로 의열단 입단1923년 2월 무기반입 모의총독부 등 파괴 계획했으나황옥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체포광복 후 광복회 고문·회장 역임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유석현 선생(사진)은 의열단에 입단해 김시현, 황옥, 김지섭 등 동지들과 전국적으로 대폭동과 요인 암살계획을 세웠으나 사전 탄로로 체포돼 징역 8년을 복역했다. 유석현 선생은 충북 충주시 교현동 330번지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충주간이농업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간이농업학교에는 훗날 독립운동가로 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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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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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청년외교단 조직해독립운동 자금 모집·선전활동11월 경북 도경찰에 체포·옥고1921년 세계한인동맹회 설립충청도의원으로 임시정부 참여광복 후 2대 국회의원 활동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연병호는 1937년 중국 상해에서 일경에 체포되기까지 20여 년 세월을 국내와 중국대륙, 만주 등지를 무대로 찬연한 자취를 남겼음에도 오랫동안 가려진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다. 그의 독립운동 행적으로는 1919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이나, 1920년대 초 대한민국임시의정원, 1930년대 한국혁명당이나 신한독립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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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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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 출생, 본향은 진천군1900년 무관학교 보병과 입교사립 보명학교 설립해 교육운동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당 조직신흥무관학교서 독립군 양성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신팔균 장군은 일제 강점기에 김좌진(金佐鎭)·홍범도(洪範圖)·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만주(滿洲)를 무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독립투쟁(抗日獨立鬪爭)을 전개했던 대표적인 무장투쟁가다. 지청천(池靑天)·김경천(金擎天) 등과 함께 독립군 인재(人才)의 삼천(三天)으로 불리던 지휘관이다.신팔균 장군은 1882년 5월 19일 서울 정동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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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8.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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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대한광복회 가입해 활동1920년 6월 징역 7년 선고 받아석방된 후에도 다시 독립운동신민부 군자금 모집 등 활약1928년 8월 신문 받던 중 순국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신현규는 광복회와 신민부에 참여해 활동했고 끝내 자결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다. 그는 충북 괴산군 문광면 옥성리에서 태어났다. 20대까지는 농업에 종사했다고 전해진다.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탄으로 헌병경찰을 동원한 무단통치가 실시되자 이에 대항한 비밀결사투쟁이 지하에서 펼쳐졌다.그 중 광복회는 1913년 경북 풍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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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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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회덕 출신·송시열 9세손동학군 봉기하자 향약 보급 형 병선 순국에 구국활동 결심1905년 11월 '토오적문'배포1912년 일제 회유책 거절 후유서 남기고 독약 먹고 순국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송병순은 충북 영동에 거주하며 후학을 양성하다가 일제의 침략에 항거해 1912년 자결 순국한 우국지사다.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동옥(東玉). 호는 심석재(心石齋).대전시 회덕(懷德) 출신.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순절한 송병선(宋秉璿)의 아우다.송병순은 회덕 석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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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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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체포돼 옥고 치른 후만기 출옥하며 옥문에서 재차 대한독립만세 고창하다 재수감헌병·경찰 등 감시·탄압 지속1934년 "독립만세" 외치고 자결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손승억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될 만큼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손승억은 충북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 방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성균관 박사였기 때문에 어려서 서당을 다니며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1919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이희갑(李喜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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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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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출생YMCA 외국어학교 졸업 후형인 신규식 따라 상해로 망명중국군 장교로 독립운동 후원1937년부터 임시정부에 참여충청도 대표의원 선임 입법활동부인 오건해·딸 신순호·사위에조카·사돈까지 "독립 만세"[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신건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원, 재무부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부인은 물론 딸, 사위, 형, 조카, 사돈이 모두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 명문가다. 신건식은 충청도 문의군 동면 인차리(현 충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2길 4-24)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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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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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후 포천으로 낙향제천 유중교 문하에서 수학갑신정변·갑오개혁 일어나자 충격 … 의병봉기 추진 실패이필희·오인영·배시석과 의병 일으켜 별동부대 활약재기 위해 서북 황해·평안도 북상길 개척에 나섰다 순국[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서상렬은 충북 단양 출신으로 제천·단양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서, 호남7읍의 도의장 및 중군장으로 토산, 금천 등지에서 활동했다. 서상렬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기도 했으나 1882년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포천으로 낙향했다. 영평의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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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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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금가면 월상리 출신경북 순흥지방서 의병 일으켜 부하 800명 거느리고 접전1908년 체포 8년간 옥고이승만의 정치 제안 거절하고 '우국노인회' 회장 맡아애국정신 함양에 힘써[충청일보 배명식기자] 백남규는 충북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 출신으로 경북 순흥지방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한때 부하가 800명에 달했으며 이강년의 우선봉으로서 강원 영월 사리치에서 선유원 홍우석의 100여 수비병을 크게 격파했다.백남규는 대한제국 사관학교인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7년 안동진위대 부위로 근무했다. 1907년 한국군이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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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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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8월 평양진위대 해산 후청풍으로 내려와 의병 모집천남전투서 일본군 5명 등 전과양재원 등과 합세 일진회 응징1908년 충주서 교전 중 전사공훈 인정 받아 '독립장' 추서[충청일보 배명식기자] 박여성은 1860년 9월 30일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1907년 8월 평양진위대가 해산당한 후 청풍으로 내려와 조동교, 황대성, 조동규, 방필성, 박덕준 등과 함게 의병을 모집, 의병장으로 추대돼 활동했다. 이 시기 제천에는 서울에서 파견된 일본군의 전면 공세를 피해 의병들이 몰려들었다.1907년 8월 15일 저녁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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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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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에 참여日 유학 시절 아나키즘 수용귀국 후 감시 피해 중국 망명주로 선전활동·친일분자 처단광복군 편입 후 군사교육 담당해방, 6·25 후에도 활발히 활동[충청일보 배명식기자] 박기성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한국청년전기공작대에서 적후방공작을 4년간 벌였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근무했다.박기성은 1905년 6월 부친의 세거지인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외가에서 보냈다.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으며 192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고학생으로 요쓰야소학교, 가이세이중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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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6.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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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상태(金尙台·1864년~1912년 9월 21일)전기·후기 의병 거쳐 1911년까지 항쟁 지속동학농민운동땐 지휘관단양 순사 주재소 습격도밀고로 붙잡혀 옥중 순절강원 영월서 '추모문화제'김상태는 1896년 전기의병에 참여한 이후 후기의병을 거쳐 경술국치 이후인 1911년까지 항쟁을 지속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영춘을 떠나 삼척 김씨들의 본향인 강원도 영월의 옥동마을로 이주, 유년시절을 보내며 한학을 공부했다. 실력이 출중해 마을에 서당을 열어 학동을 지도하고 향교의 직임을 맡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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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5.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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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권순명 (權順明·1876년 8월 11일~미상)김춘쇠 의병장 등 동료 600명과 경기 양주·가평, 강원 홍천서 군자금품 모으며 日 수비대와여러 차례 교전하는 등 의병활동15년 옥고 치렀지만 재판 기록뿐사망사실조차도 확인되지 않아권순명은 충북 제천 근좌면 장담리(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출신으로 후기의병에 참여해 활약한 인물이다. 제천 장담마을은 한말 의병운동에 중요한 곳이다. 화서학파의 정맥을 이은 유중교가 살았고 그의 제자 유인석이 한 때 거주했던 곳이다. 권순명은 근처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유인석의 위정척사사상 영향을 받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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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5.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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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이원면 의병 출신 곽준희 장남으로 태어나독립만세시위 활동으로 체포… 대전형무소 옥고상해 망명 인성학교 교사로 민족사상 고취 힘써사진관 운영하며 독립운동 비밀연락 장소 제공동생 곽중선 통해 윤봉길과 거사에 대비 등 공훈[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의병 출신인 곽준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윤봉길 의사의 숨은 조력자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옥천군 이원면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돼 대전형무소에서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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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5.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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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생… 대동청년당 가입청남학교 재직시절 3·1운동 발생시위운동 동참 후 중국 만주 망명김원봉과 의기투합 의열단 조직북경으로 가 암살 파괴활동 계획폭탄 재료·권총 등 국내로 전달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실행 상의하다 체포돼 옥고광복 후 귀국해 교육사업 종사도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야 부절(不絶)하는 폭력-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야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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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식 기자
2019.04.28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