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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신니면 장터서 독립선언서 낭독 등 만세운동 주도

기사승인 2019.06.16  16: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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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손승억 (孫承億·1893년 10월 21일~1934년 4월 16일)

   

일본군에 체포돼 옥고 치른 후
만기 출옥하며 옥문에서 재차 
대한독립만세 고창하다 재수감
헌병·경찰 등 감시·탄압 지속
1934년 "독립만세" 외치고 자결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손승억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될 만큼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손승억은 충북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 방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성균관 박사였기 때문에 어려서 서당을 다니며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1919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이희갑(李喜甲)의 집에서 모여 이튿날 신니면(薪尼面) 용원(龍院)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단경옥(段慶玉)·이희갑·이강렴(李康濂) 등과 독립선언서를 제작, 등사했다. 
4월 1일 약 200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그들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됐다. 그해 5월 13일 손승억은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 항소를 하며 법정투쟁을 펼쳤다. 그러나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확정 받아 청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청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게 될 때 옥문에서 재차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재수감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했다. 출옥은 했지만 일본 헌병·경찰 등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1934년 4월 16일 독립만세를 외치고 목을 매어 자결 순국했다. 

손승억은 방추마을 생가 뒷산에 묻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배명식 기자 mooney7777@naver.com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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