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베트남이 졌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졌다. 1월 8일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경기. 후반 종료 직전 한 골을 허용해 베트남은 2대 3으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베트남의 A매치 연속 무패 행진 기록이 18경기에서 멈췄다. 그런데, 무패 행진에 제동이 한 번 걸리니 패배가 또 이어졌다.

12일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0대2로 패한 것이다. 아쉽고 걱정스러웠다. 스즈키컵 우승의 열풍이 식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박항서 매직이 멈추는 것은 아닌지. 사실 이번 아시안컵 축구대회는 한국팀 성적보다 베트남팀 성적이 더 궁금했고, 베트남을 더 많이 응원하고 싶었다.

축구는 가장 단순한 스포츠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둥근 공과 인간의 몸이 한데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별다른 규칙도 필요 없다. 축구는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다. 빈부격차 없는 스포츠라 말하기도 한다. 야구는 좀 다르다. 야구공과 방망이, 글러브에 마스크까지 필요하다. 야구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진행된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그렇다보니 규칙도 복잡하다.

놀라운 점은 ‘도둑질’ 용어까지 등장한다는 사실. 바로 스틸(steal) 즉 도루(盜壘)다. 야구의 기본은 잘 던지고 잘 치는 것이다. 물론 잘 달리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발 빠른 선수는 투타와 관계없이 1루에서 2루로 내달린다. 3루에서 홈으로 달려드는 홈 스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무리 공이 먼저 들어왔어도 수비수가 공을 놓치면 끝이다. 무언가 좀 불공정해 보인다.

유럽인은 축구를 좋아하고 야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인은 축구보다 야구를 훨씬 더 좋아한다. 유럽인들은 야구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축구는 인간적이고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유럽이 축구를 잘하지만 야구를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축구다. 요즘 우리가 베트남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인이 감독을 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참전의 역사는 베트남과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상처가 베트남 축구 신드롬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베트남과 대한민국 국민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졌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안한 얘기지만, 베트남 축구는 아직 아시아에서도 변방 수준이다. 스즈키컵 우승을 통해 베트남이 자신감을 얻은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스즈키컵은 변방의 축구대회다. 스즈키컵 우승은 변방을 벗어나기 위한 출발이다.

중심부로 진입할수록 베트남이 맞붙어야 할 상대는 축구 강호들이다. 지금 그들과 붙어 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8경기 연속 무패면 됐다. 패할 것은 빨리 패하는 것이 좋다. 19연승보다 18승 1패가 좋다. 20연승보다 18승 2패가 더 좋다. 져야 다시 이길 수 있으니까.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는 패했지만 패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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