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체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 나라꼴이 왜 이런지 알 수가 없다. 심석희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고발로 촉발된 체육계의 민낯은 국민들을 울분에 차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연예계는 물론 법조계·문화예술계·학계·의료계까지 불었던 미투 운동이 올해는 체육계에 불고 있다.

심 선수가 수사기관에 낸 고소장을 보면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지난해 평창 올림픽 개막 2달 전까지 조 전 코치로부터 수차례 수차례 성폭력과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성폭행 장소는 태릉과 진천선수촌, 한국체대 빙상장 라커룸 등 4곳이라고 했다. 심 선수는 이런 일을 당하면서 수차례 선수촌을 이탈했고 "죽고싶다"는 심정을 가족들에게 토로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유도 신유용 선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코치에게 수십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유도 코치는 기숙사에서 신 선수를 성폭행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성폭행을 하며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해당 코치는 신 선수가 임신했을까 걱정돼 임신 테스트기를 주고 병원에까지 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두 선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성폭력 사건이 비단 이들에게만 있었을리 만무하다.아직 폭로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선수들이 담당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개연성이 크다.

치밀한 범죄 계획을 세우고 피해 선수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성폭력을 가하는 전형적인 미투 가해자 특징이라는 것이 여성시민단체의 설명이다. 더욱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들 선수들의 말이 맞다면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현재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사안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 일을 직접 언급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체육계 성폭력 피해 증언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드러난 일 뿐 아니라 개연성 있는 범위까지 철저히 조사·수사,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어 스포츠계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야 하고 정부와 국회가 체육계 성폭력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조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서둘러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여성 운동선수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이렇게 대통령까지 체육계 성폭력 사건을 거론하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체육인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일들을 털어놔야 한다. 인정으로 봐준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어디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시적으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못된 행동들엔 이참에 첱퇴를 가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장 강력해야만 한다. 엄격한 법의 심판이 죄를 저지르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정부나 사법부는 피해자 부모 심정으로 이번 체육계 사건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래야만 가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가려내고 처벌 수위를 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뿌리 뽑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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