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충청일보> 

영화 '택시 운전사', '1987' 이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웰메이드 작품이 또 한 번 탄생했다. 바로 '국가부도의 날'이다. 최초로 IMF를 다룬 영화는 현시대를 향해 묵직한 한 방을 제대로 날린다.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한수현(김혜수)과 경제부 차관(조우진 분), 윤정학(유아인 분), 한갑수(허준호 분)의 갈래로 나눠서 진행된다. IMF 사건을 바라보는 각 층의 시각을 대변한다. 국가부도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수현, IMF로 자신의 계급을 갈아치워버리는 정학, 그리고 서민들을 대표하는 한갑수의 이야기가 교차고 나오지만 이야기는 한 갈래로 걸어가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수현(김혜수)는 국가부도의 위기를 예측해 보고서를 올리며 경고하지만, 재정국 차관(조우진)과 부딪친다. 재정국 차관은 이 위기를 통해 부인부 빈익빈 현상을 만들려는 인물이다. 국민을 위한 결정이 아닌, 소수만을 위한 결정으로 끌고 가기 위해 판을 짠다. 하지만 수현은 통화정책팀들과 가만히 있지 않고 국가 위기를 넘기려고 노력한다. 

고려상호금융에 다니며 개인의 재산 투자해주던 윤정학(유아인)은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에서 철수하고 하루하루 살기 힘들다는 라디오 사건에 주목한다. OECD 가입을 축하하며 경제 위기는 없다고 연실 떠들어대는 정부와 언론을 믿지 않고 자신의 예측을 믿는다. 개인 투자자들을 모아 국가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 다시 없을 베팅을 시작한다. 

한갑수(허준호)는 작은 그릇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미도파 백화점에 그릇을 납품하는 계약을 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다. 중학생이 되는 딸 현아의 뒷바라지와 밤 늦게까지 일하는 맞벌이 아내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한다. 하지만 경제위기 속 미도파 백화점이 부도를 맞게 되고 현금 대신 받은 어음은 종이조각이 됐다. 가족들을 위해 파산 만은 면하려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 될 뿐 나아지질 않는다. 

각기 다른 세 인물 중심의 이야기와 어려운 경제 용어, 상황들이 몰입 우려될 수 있겠지만 '국가부도의 날'에서 만큼은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가 됐다. 특히 한수현과 IMF 총재와 협상 중 영어 설전을 극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정도로 집중하게 된다. 영어 대사와 어려운 경제 용어로 힘들었을 법 하지만, 김혜수는 한수현으로 체화시켰다. 한수현 캐릭터는 김혜수의 장점을 극대화한 캐릭터로 빚어졌다. 

배우들의 연기 뿐만 아니라 1997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세트장과 소품, 뉴스 등은 저마다의 그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명예퇴직, 비정규직, 현재의 실업률이 IMF에서 생겨났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정부는 경제위기로 아수라장이 된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기는 금방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윤정학은 외친다. "속을 줄 알았지?"라고. 그리고 20년 뒤 한수현은 "두 번은 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화는 후반부에서도 알량한 희망을 주지 않는다. 씁쓸함과 얼얼함이 공존한다. 지어낸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21년 전 사건이 실화라는 걸 알고 있기에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겐 남다른 메세지로 다가올 것이다. IMF 사태까진 아니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경제사정이 나빠져 고민하고 있는 2018년,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는 영화가 오는 28일 극장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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