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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산책

기사승인 2019.10.17  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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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밀게 한다. 무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린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다가왔다. 정말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의 변화를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몸부림칠지라도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코스모스가 아닐까 싶다. 하늘하늘한 줄기에 매달린 채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 저절로 순수의 세계에 빠져든다. 산책로 길가에 쭉 펼쳐진 꽃길을 걸어가는 순간 마음속 깊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다. 한동안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본다.

얼마 전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국립중앙도서관 언덕길을 산책하였다. 지난 밤 수많은 인파로 인해 몸살이 났을 법한 거리는 시위의 흔적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참가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자신들이 지지하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수개월 째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논쟁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각각의 진영 논리에 빠져 단기간에 갈등이 해결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조만간 일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세월의 인고를 잊은 채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어우러져 마음을 한결 편안하다.

가을이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자주 걸었던 코스모스 산책길의 추억이 떠오른다. 언제나 아무런 말씀 없이 한 걸음 앞서 걸어가셨다. 사십의 늦은 나이에 얻은 몸이 약한 막내가 걱정이 되었지 유난히 애지중지 하셨던 것 같다. 평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라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몸소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식들이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필자가 학교를 졸업하고 갓 직장에 들어갔을 때 방송에서 각종 비리사건이나 사고 관련 뉴스를 보시면 특별한 말씀도 없이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었다. 아마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감사하다.

어렸을 때 부지런하신 아버지 덕분에 형편이 크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배고픔은 모르고 살았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부지런한 성품으로 가족들을 대신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기억나는 일의 하나는 항상 식사 시간이 되면 가족들 식탁 옆에 다른 하나의 식탁이 차려졌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나 행상을 하면서 자주 찾아오는 분들을 위한 상차림이었다. 당시에는 철없는 마음에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하기도 했다. 다른 이웃집처럼 가족끼리 오순도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을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전해져 나름대로 건강하고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자녀 입시문제와 정직성으로 곤경에 빠진 어느 공직자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편으로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자식들에게는 엄격하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가족과 주변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우선 배려하는 삶의 자세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순간이다.

초가을에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사이를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지는 고운 햇살이 아버지의 포근한 모습과 어우러져 편안하고 따뜻하다. 가까이에서 함께 걸어가지만 간간히 들리는 호흡만 느껴질 뿐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면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에 마음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혼자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가를 걸어가는 순간 아버지의 포근한 사랑이 느껴진다. 저 멀리 잔잔하게 수놓은 새털구름 사이로 아스라이 아버지 형상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주 낯익은 모습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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