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문화유산학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라디오 스타'(2006년 개봉)라는 영화가 있다. 주연은 박중훈, 안성기였다. 박중훈은 가수 최곤 역을, 안성기는 매니저 박민수 역을 맡았다. 가수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잘 나갔던 최곤은 세월이 흐르고 인기가 사라져 지방의 작은 방송국 DJ로 전전하게 된다. 과거의 화려함과 현재의 옹색함, 그 간극 앞에서 최곤은 시골 DJ의 삶에 불만을 터뜨리며 배회한다. 박민수는 그런 박중훈을 눈치코치 봐가면서 다독여준다. 대중스타의 부침(浮沈)을 통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재미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 촬영지는 강원도 영월이었다. 그 중에서도 DJ 진행 장면은 KBS 영월방송국 건물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방송국이 문을 닫았다. 방송전파 송출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읍 단위 지역의 소규모 방송국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영월군은 2015년 이 방송국 건물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꾸몄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관한 영상과 시각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오래된 라디오를 비롯해 관련 자료를 전시해 라디오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등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몇 개의 스튜디오(DJ 박스)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직접 방송을 진행하고 그것을 녹음해 파일로 가져갈 수도 있다. 라디오스타 박물관은 영월 지역의 26번째 박물관. 박물관의 도시 영월답게 사라져버릴 공간 하나라도 그 흔적을 살리고 기억하려는 지혜가 돋보인다.

청주시 사직동에 청주시립미술관이 2016년 문을 열었다. KBS 청주방송국이 성화동으로 옮겨감에 따라 방송국 건물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꾸민 것이다. 청주시민의 숙원 가운데 하나인 미술관을 세운다는 점에서, 게다가 방송국 건물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청주시립미술관을 소개하며 "방송국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청주시립미술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방송국 건물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은 하나도 없다. 홈페이지에 "청주시 사직동의 옛 KBS 방송국을 리모델링했다"는 간단한 문구만 있을 뿐이다. 방송국의 흔적 하나 남겨두지 않은 채 "이곳이 과거 방송국 건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냥 새로 지은 건물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흔적은 분명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살리지 않았다. 방송국의 흔적이나 시설이 미술 전시에 어울리지 않고 또 전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술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일상과 미술의 결합 또는 융합이 빈번한 게 요즘의 현대미술이다.

그렇기에 방송국의 흔적을 남겨 두었더라면 현대미술을 전시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더욱 입체적이고 다채롭게 미술을 보여줄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청주시립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허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흔적과 기억을 외면해버린 미술관. 이에 대한 성찰과 함께 보완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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