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들링 나방 들어오면 한국 과수농업 순식간에 쑥대밭”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유통 철저히 막아야”

▲ 한국을 방문한 천한졔(陳漢杰) 교수가 사과와 잎을 들고 병해충 감염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이득수 기자] 전 세계적으로 요즘 가장 무서운 사과 병충해는 코들링 모스(Codling moth)라고 불리는 나방이다. 이 나방이 나타나면 수년 내에 한 지역의 사과산업이 초토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과 뿐 아니라 복숭아 자두 살구 배등에 피해를 주어 재배농가와 행정당국자들도 말 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다.

얼마 전 부산 감만 부두에서 남미에서 큰 피해를 입히고 전 세계로 확산 중인 불개미 100여마리가 발견돼 온 나라가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남미 원산인 이 불개미 떼는 수출입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와 함께 한국에 상륙했다. 여왕개미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얼마 전엔 평택 항에서도 발견돼 당국을 긴장시켰다.

불개미로 인해 해충 확산 문제가 큰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 중국농업과학원에서 과수(果樹)병충해 전문 연구원인 천한졔(陳漢杰) 교수가 최근 내한해 민·관 병충해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사과 생산국가다. 연간 440만t을 생산해 세계 총 생산량의 56%를 차지한다. 사과 병충해 연구 부문에서도 중국은 정상급 연구원과 연구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는 중국농업과학원 산하에 요녕성 싱청과수연구소와 하남성 정저우(鄭州)과수연구소가 있는데 진 교수는 정저우과수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천 교수는 사과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코들링 나방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 경북 안동에 있는 한국과수연구소를 둘러본 그를 만나 코들링 모스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에 내한한 목적은 한국의 과수병충해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양국간 정보교류를 타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교수는 평생을 연구해온 코들링 나방에 대해 “코들링 유충은 사과 속을 충치처럼 파먹어 아주 못 쓰게 만드는 악성 병해충이다. 한번 발생했을 때 초창기에 막아내지 못 하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준다. 중국 전역의 대형 사과재배  단지에서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코들링 나방은 1953년 중국 신강성(新疆省)에서 처음 발견했다. 1957년에서야 코들링 나방에 대한 첫 보도가 나왔고, 위해(危害)성이 아주 강한 심식충(深食蟲)으로 판정됐다고 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가 많아진 한국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손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특히 사과 복숭아 등 과수의 중심지로 떠오른 충청북도는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그의 진단은 새로운 사과 재배지로 각광받고 있는 충북 사과 산업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국내 농업 전문가와 행정당국은 코들링 나방이 만일 한국에 들어온다면 사과 산업은 물론 배, 복숭아 살구 등 다른 과수들까지 전멸당할 것을 우려한다. 코들링이라는 말만 들어도 움츠러든다고 한다. 당국이 검역을 철저히 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 예찰 트랩을 설치해 예의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천려일실, 단 한 번의 실수만 하더라도 순식간에 한국 전체의 과수산업을 궤멸시킬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천 교수는 코들링 나방이 첫 발견지인 신강성에서 빠져나와 중국 동북지방까지 확산됐다며  “단 한 명의 관광객의 실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신장성에서 깐수성(甘省)에 있는 고대 도시 둔황(敦煌)에 한 여행객이 코들링 유충이 든 신장지역의 사과를 가져 온 것이 둔황(돈황)지역의 사과농장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은 성(省)과 성(省) 간에는 농산물이나 동물을 이동시킬 때는 검역을 하고 있지만 땅이 워낙 넓어 병충해 전파가 쉽게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2000년에는 역병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가운데 방역망이 뚫려 뚠황(敦煌)에서 깐수성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깐수성으로 번진 코들링 나방이 중국 동북지방인 지린성, 등에 퍼진 계기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동북지방에서는 과일 주스를 만들어 미국 한국 등에 판매해왔는데 수출 물량이 폭주해 원료가 품귀 되자 가공업자들이 사과와 배를 감숙성에서 구매해 주스로 가공, 수출했다. 그런데 싸게 많이 구입할수록 이윤이 좋아 감숙성에서 벌레 먹은 등외품인 사과와 배 등 과일을 열차와 대형 트럭으로 대량 깐수성에서 코들링에 오염돼 따 버린 사과를 동북지방에 가져와 가공했다. 폐기처분한 사과를 가져다 가공·수출했으니, 결국 미국 한국 등의 중국산 사과주스 소비자들이 썩은 과일을 먹은 셈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유충이 방어망을 뚫고 깐수성을 나와 길림성 사과재배 단지에 유출됐고, 코들링 나방이 급속히 번진 계기가 됐다. 피해 면적이 워낙 광범위해 약으로 방제하기 힘든 상황에 빠졌다. 1994년엔 중국흥룡강성 목단강에서도 코들링나방이 발견됐다. 2007년까지 코들링나방이 중국 서부 쪽과 동부지역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2007~2009년에는 깐수(甘肅) 서부, 닝하이(寧夏) 서부, 헤이룽장(黑龍江)·지린성(吉林省) 일부 지역에서 코들링 나방이 연거푸 발견됐고, 코들링 나방 피해 면적은 남한면적의 4배반 정도인 32.96만㎢ 에 달했다.

천 교수는 “코들링 나방은 비행 능력이 약해 2㎞ 이상 날지 못하고, 주 활동영역이 반경 600m 정도여서 확장성은 약하지만, 주로 인간에 의한 전파가 결정적인 확산 요인”이라고 밝혔다.

▲ 정저우(鄭州) 과수연구소 실험실에서 천한졔(陳漢杰)

국제 교류가 빈번해진 요즘 특정지역의 토종 병충해가 이동 수단에 묻어서, 또는 무심한 관광객이 규정을 어기고 농산품을 갖고 들어오는 등의 인재(人災)로 인해 쉽게 전파되고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다. 길림성과 왕래가 빈번한 한국은 특히 옌벤(延邊) 등지의 사과 배 살구 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게 그의 조언이다.

천 교수는 방제 대책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코들링 나방 방제에 있어서 첫 번째는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 하게 원천 차단하는 검역이고, 그 다음이 전국 각지에 많은 예찰(豫察) 트랩(trap) 설치와 과수 관찰을 통go 조기 발견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단 코들링이 발견되면 나무에 열린 과일을 다 따 버려 먹이를 없애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코들링은 먹이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고, 먹이가 부족할 경우라도 2km  이상 비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따 버리는게 가장 쉬운 방제 방법이다.”또, 주위의 기주(寄株) 식물(나방이 숙주로 삼고 있는 나무)을 쳐내고 과수원 격리가 잘 된 상태에서 페르몬제를 활용하거나, 스피로테트라맷(Spirotetramat) 클로란트라닐리프롤Chlorantraniliprole) 델타메트린deltamethrin)등의 구충제를 살포해 박멸할 수 있다고 한다.

천 교수는 “한국은 사과 재배단지가 많지만 다행히 대부분 산으로 차단돼 있어 순식간에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 점에서 평야가 넓게 트인 중국보다 방제하기가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또 “코들링 나방은 1회 비행 거리가 50m 정도이고 먹이가 없을 경우에도 2km이상 비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은 산이 좋은 자연 방어벽을 형성해 쉽게 확산되지 않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들링나방은 건조한 지역을 좋아하고 여름 습도가 높은 지역을 싫어하여 습도가 35~49%까지 낮아 도 산란하는 데에 영향이 없고 상대습도가 74% 이하에서만 성충이 산란한다. 강수량도 나방이 유충에서 번데기로 변화하는 과정과 번데기의 우화(羽化), 또는 성충의 생존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강우(降雨)가 있을 경우 논밭에서 산란과 유충의 생존율 또는 과일 가해율이 줄어든다. 침수가 오래되고 강우량이 많아질수록, 강수가 잦아질수록 유충과 번데기 사망율도 높아진다.”

코들링나방 방제와 관련해 천 교수는 “한국 당국이 코들링이 발생 했을 경우 재배농가 지원에 적극 나서고, 성페르몬과 농약 사용을 겸비한다면 중국보다 훨씬 쉽게 박멸할 수 있다”며 “중국보다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라고 한국을 관찰한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닝샤에서는 코들링 발생지역 4군데 농장에 성페르몬과 살충제를 살포해 박멸한 실적이 있이 이들 약제의 효능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코들링나방이 번진 역병지역 내 사과를 타 지역으로 반출할 때 인화알루미늄(56%인화알루미늄錠劑 aluminium phosphide)으로 과일을 훈증하고 운반 도구인 차량 상자 등을 철저히 검역한 후 외부로 반출한다고 한다.

천 교수는 “1953년 서부 신장에서 코들링이 발견돼 동북의 흑룡강성 길림성까지 확산됐지만 검역과 방제를 철저히 하여 아직까지 사과 주산지에는 확산되지 않았다”며 “코들링의 확산은 사람에 의한 인재”라고 재삼 강조한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라 중국의 경우 사과 주산지도 바뀌어 발해만 지역에서 비교적 기온이 낮은 서쪽의 황토 고원지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사과 주산지가 자꾸 북상해 대구 경북에서 충북 산간지역으로 그 중심지가 이동했다. 충북이 미리 방제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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