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원정근·김영숙 부부
깻잎 농사로 연 9천만원 수익

▲ 19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원정근·김영숙씨 부부가 깻잎을 수확하고 있다.

[옥천=이능희기자]  지난 2003년 탈북해 깻잎 농사로 부농의 꿈을 일구는 부부가 주목받고 있다. 

옥천군 군서면에서 8년째 깻잎 농사를 지으며, 현재는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멘토 역할을 하는 원정근(62)·김영숙(59)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 부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남편 원씨는 김일성정치종합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30여년간 장교로 근무하며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일명 백두산 줄기라고 불리는 항일투사 후손들에게 매번 승진이 밀리는데다 증조할아버지가 소작인을 부리던 자작농이었다는 출신 성분 때문에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전역했다. 이후 녹록지 않은 생활 형편으로 아내, 두 딸과 함께 하루하루 고되고 힘든 생활을 이어오던 중 탈북을 결심했다.

가장 가까운 중국으로 가려면 250m 되는 압록강을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야 했다.

장교 출신으로 수영 하나는 자신 있던 원씨와는 달리 전혀 헤엄을 치지 못하는 아내와 두 딸은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원씨는 2003년 8월 온갖 고난 끝에 먼저 아내를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나머지 두 딸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이후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힘겹게 살아오던 중 다행히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과 연결돼 탈북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도착하자마자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관 생활을 마치고, 주유소·골프장·제과점 등에서 밤낮없이 일용직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던 중 원씨 부부는 우연히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영농교육 프로그램을 접했고, 강원도와 경남, 전남 등지를 돌며 영농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연간 수확이 가능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깻잎에 관심이 갔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깻잎 산지로 유명한 옥천군 군서면에 2011년 6월 정착했다.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고, 주위 선배들이 귀찮다할 만큼 자주 찾아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로지 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밤낮없이 농사지은 지 8년.

지금은 3000여㎡ 크기의 하우스에서 연간 9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만큼 나름 부농이 됐다.
탈북 관련 단체에서 귀농을 꿈꾸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모범사례로 소개되며 지난해에는 통일부장관이 원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군서면에는 원씨를 모델삼아 귀농한 북한이탈주민이 9가구 더 있다.

그 중 7가구는 한창 깻잎 농사 재미에 푹 빠져 사는 행복한 농사꾼이다. 나머지 2가구는 초보 농사꾼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원씨는 "이곳 군서면에 정착한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성공한 귀농인이라고 주위에서 이야기하니 보람이 있다"며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이탈주민들이 농사를 배우고 싶다고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단순히 생각할 수 없는 게 농촌생활"이라며 "후배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들을 전달해 성공적인 정착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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