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새해가 시작되어 며칠 보냈나 싶더니 2월이다. 어느 잡지에서 2월하면 생각나는 단어를 조사했더니 '벌써'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금년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이번 달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며칠 모자라는 달인지라 더 빨리 그렇게 지나갈 것 같다.

 직장마다 다르겠지만, 새로운 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대학은 요즈음 정중동이다. 학생들은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지만, 교수들과 직원들은 부서마다 바쁘다. 신입생을 선발하여 맞을 준비며, 졸업식도 치러야 하고, 새로운 학기의 강의를 준비해야 하기에 바쁘다. 며칠 전 흰 눈이라도 내리는 날은 그야말로 조용한 산사와 같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쳐진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행동연구가인 마이클 바엘리 박사는 축구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행동을 분석했다. 월드컵, 유럽컵, 챔피언스 리그 경기의 286개 페널티킥을 분석한 결과,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는 12.6%의 공을, 왼쪽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는 14.5%의 공을 막아 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움직이지 않고 골대 중앙에 머문 골키퍼의 경우 33.3%의 공을 막았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골키퍼의 6.3%만이 중앙에 머물렀다고 한다.

 확률로 보면 골키퍼가 가운데에 그냥 서 있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그러나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골키퍼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한다. 몸값이 비싼 프로 선수가 가만히 지켜서 있는 것은 무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골키퍼가 열심히 움직였는데도 방향을 못 맞추어 골을 허용했다면 운이 나쁜 것이지만, 골키퍼가 가만히 서 있다가 공이 한쪽 구석으로 들어갔다면 비난을 받는다. 팬이나 동료선수 그리고 감독은 골키퍼가 몸을 움직여 '몸값'을 하기 바라는 것이다(출처: 홀름 프리베, <당신이 원하는 기회는 오지 않는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성에 이끌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차라리 '가만히 서서'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혜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2월은 마치 12월 연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달이 지나면,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학생 들 뿐만 아니라 그 춥던 겨울이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소리가 저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잠시 분주한 일상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본다.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분주했던 모습이 부끄러워지면서 중심을 잡아간다.

 새 학년이 다가온다. 아니, 진정한 새해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금년 초에 세웠던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아직도 미루고 있는 일들 중에서 가능하고 작은 일부터 곧 시작해야겠다. 새 학기에는 우암산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청주시내 전경을 가끔 눈을 감은 채 바라봐야겠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안정된 마음을 되찾아 세상을 대할 용기를 얻고 싶다. 골키퍼가 골대 중앙에 서서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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