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I로 한달만에 폐쇄
야생동물 개체수 조절 실패
올해 농작물 피해신고 급증
멧돼지 습격에 농민들 한숨

▲ 멧돼지가 높은 곳에 달린 복숭아를 먹기 위해 나뭇가지를 마구 부러뜨려 놓은 충북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 복숭아 밭.

[옥천=충청일보 이능희기자] 충북 옥천에서 순환수렵장이 조기에 중단된 후폭풍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20일부터 석 달 일정으로 수렵장이 개설됐다. 전국에서 엽사 600여명이 몰려들어 멧돼지와 고라니 사냥에 나섰지만,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한 달 만에 폐쇄됐다. 순환 수렵장 운영 기간은 61일 정도 단축됐다.

이로 인해 포획이 허가된 유해 야생동물은 2만3944마리였지만 33.1%인 7940마리만 잡혔다. 농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멧돼지는 허가된 256마리 중 33.2%인 85마리가 포획됐다.

이런 여파로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 멧돼지나 고라니 피해를 호소하는 신고다.

옥천군에 따르면 올해 7월말 기준 야생동물 피해신고는 38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3% 늘었다.

이에 군은 자율구제단을 투입해 1784마리를 포획했다.

이 가운데 멧돼지와 고라니가 1672마리 잡혀 전년보다 32.6% 늘었다.

수렵장 운영을 통한 유해 야생조수 개체 수 조절이 실패해 야생조수들의 서식밀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방증이다.

옥천지역 멧돼지 포획량은 2014년 120마리, 2015년 241마리, 지난해 275마리로 해마다 늘고 있다. 2014년 40건(4만2575㎡)이던 농작물 피해 보상 역시 2015년 37건(5만3129㎡), 지난해 104건(9만4974㎡)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군은 수렵만으로는 멧돼지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먹이로 유인하는 역발상 대책을 시행했지만 야생동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고라니 등 다른 유해조수도 많기 때문에 멧돼지 유인책만으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논밭으로 내려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농민들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군북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박모씨(65)는 "먹이를 찾아 내려온 멧돼지들이 큰 몸뚱이를 논바닥에 비비고 뒹굴어 벼가 쓰러지는 피해를 입었다"며 "멧돼지 등살에 1년 뼈 빠지게 지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박모씨(38)는 "멧돼지들이 높은 곳에 달린 복숭아를 먹기 위해 나뭇가지를 마구 부러뜨리고 뿌리 채 뽑아버리는 등 과수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올해는 수확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처참한 지경이다"고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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