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맑은 하늘에서 눈발이 흩어진다. 눈이 흩날리다가 멈추고 다시 흩날린다. 눈이 오려면 소담스런 함박눈으로 내려 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야 한다. 온통 하얀 눈밭을 보면 세상이 고요하여 마음이 평안해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하루 종일 덩달아 산만하다. 덕분에 오래 된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마치 마술에 걸린 듯, 빛바랜 사진들은 시간이 멈춰있다. 단발머리에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앳되다. 그 모습들이 상큼하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풋사과를 한 입 배어먹은 맛이랄까! 싱그럽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을 선택 할 수 있으려나? 숱한 시간 속을 헤매며 걸어 온 길이기에 달라 질 수 있겠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회만 제공되는 우리의 인생길이다.

 하마 수 십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들이 아주 짧게만 느껴진다. 마치 엊그제 같은데, 수분이 빠져 늙은 피부는 마치 도깨비가 장난을 친 것만 같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그 속에 얼굴은 분명 같은 얼굴인데 다르다. 서있는 모습도 이제는 구부정하다. 그때부터다.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도 이 무렵이다. 그 많던 날들을 작은 몸뚱어리에 처바르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겠다고 화장을 하고 등산을 가고 그렇게 헐떡이며 시간을 붙잡았지만 어느새 끼리끼리 모여 일출보다 낙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도 미련처럼 멈춘 시간 속을 헤집으며 열정을 품는다. 깊은 어둠이 해를 품었다가 토해내는 새벽의 진통을 비로소 알아듣는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툭툭 걷어차며 스치듯 지나온 시간과 인연들의 존재가 나를 이끌고 이 시간까지 와주었다는 것을. 걸어 온 시간보다 가야 할 시간들 속에서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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