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살림
무한경쟁사회 사는 현대인에
아들러 심리학 지침으로 제시
"관점만 바꿔도 삶이 바뀐다"

[충청일보 오태경기자] '아들러 심리학'의 1인자인 기시미 이치로의 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가 출간됐다.

기시미 이치로는 총4부에 걸쳐 인생이 잘 안 돼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실천적 지침을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보고 괴로움의 정체를 직시하게 하는 1부, 2부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괴롭혀왔던 문제의 원인과 목적을 되짚어봄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는 경이를 경험하게 된다.

아들러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들러 심리학을 '소유의 심리학'이 아니라 '사용의 심리학'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소유, 즉 '주어진 것'은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 갖다 붙이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과거의 기억, 타고난 성격, 자신을 둘러싼 환경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가정불화가 심해서" "트라우마가 있어서" "내성적이라서" "외모가 그저 그래서" "집안 형편이 못 받쳐줘서" "스펙이 나빠서" 등은 얼핏 현실적으로 타당한 듯 보이는 이유들이다. 무한경쟁 사회, 외모지상주의, 수저계급론과 같은 객관적 정황들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는가? 세상이 온통 이런데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나 아닌 다른 요인들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인과'가 아니라 '목적'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이 잘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분석하고 의심하다 보면, 그 실체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1부와 2부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해체하고 저자의 질문에 끝없이 충돌하게 되므로 매우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해부하듯 꿰뚫어보는 이런 과정은 평생 핑계만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 속에 사는 괴로움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다.

1, 2부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를 파악했다면, 3부와 4부에서는 괴로움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천적 가르침을 제시한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했다. 또 인생의 모든 어려움은 나와 나, 나와 남, 나와 세상 사이에서 불거진다고 했으니 이번엔 자신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문제는 타인을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존재, 심지어 '적'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타인을 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으므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같이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제도권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오히려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인식도 못 한 채 그렇게 살아왔음을 방증하는 것이므로 더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이 적으로 가득하다는 관점에 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든 남을 짓밟고 우위에 서고자 말겠다는 우월콤플렉스, 아무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 구석에 꼭꼭 숨어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열등콤플렉스에 빠지고 만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니, 혹은 나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니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러가 드는 사례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나의 핑계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하는 소름 돋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문제 제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원저인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이 주는 통찰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타인에 관심 기울이기, 타인은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기, 타인과의 과제 분리하기 등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아들러 심리학을 현실로 옮겨오는 경험을 선사해준다.

기시미 이치로가 짚어내는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의 핵심은 '의미부여'다. 즉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부여'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관점을 말하는데 아들러는 이러한 자신과 인생과 세계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활양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이 '생활양식'은 자신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견해인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때의 정해진 패턴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며 한탄을 하지만, 실은 상대나 상황이 다를 뿐 늘 같은 패턴으로 행동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생활양식'을 바꾸는 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조차 우리가 선택한 것이므로 결과가 예상되는 선택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생각의 '관점'만 바꿔도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심이 되어버린 시대다. 과거의 기억, 타고난 성격, 주어진 환경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강력한 믿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도 하기 전에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믿음은 그저 믿음일 뿐이니 버리면 그만이다.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버리고 언제든 새로운 자신이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스마트폰의 OS를 갱신했을 때처럼 말이다. 생활양식을 바꿔 새로운 자신으로 미지의 세계를 선택해보자. 인생의 판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1만 3000원.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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