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24일 국회 국정감사가 끝남과 동시에 터져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으로 정치권이 격랑에 빠졌다. 여야 모두 개헌의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권력 구조 같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 온갖 의견만 나돌았던 정치권은 이날 예상치 않던 대통령의 '깜짝 카드'로 개헌 정국에 빠져들었다. 대통령의 제안은 "필요하고 적절한 때"라는 반응과 "권력형 비리 의혹을 덮으려는 국면 전환용"이라는 냉담한 시선이 함께 하면서 향후 추이는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지난달 26일부터 시작, 기간 연장이라는 파행을 겪은 끝에 29일간의 일정을 끝낸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정책 검증이나 대안 제시, 경제 회복과 민생 등 현안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별로 엿보이지 않아서다. 당장 국민의 발을 묶으며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철도 파업,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경주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안전, 가습기 피해 국정조사도 국민의 걱정과 아픔을 달래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죽하면 시민단체인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은 국감 중간 평가 보고서에서 낙제점인 F 학점을 줬다. 이 단체가 모니터를 시작한 15대 국회 이후 18년 만에 부여한 최저 점수다. 역대 최악이라며 '식물국회'핀잔을 들었던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도 D 학점이었다. 대신 부실한 국정감사 현장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꿰차고 들어갔다. 권력 실세, 비선, 774억 원이라는 대기업의 석연치 않은 모금, 수상한 재단 운영 등 평소 듣기 힘든 말들은 '우병우·최순실 게이트'로 번지면서 국정감사를 뒤덮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국회사무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한 해 국감에 들어가는 나랏돈은 10억 원이 넘는다. 2013년 12억3755억 원, 2014년 11억 4483만 원, 2015년 13억 5020만 원이었다고 하니 정책 검증과 대안 제시를 못 한 국감은 고비용 저효율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제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은 검찰로 넘어가고, 국회는 예산과 입법 전쟁을 벌여야 하는 판에 개헌 카드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해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새로운 2017년 체제로 바꿔야 하는데 국민 여망이 실린 지금이 적기라며 새해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임기를 약 1년 4개월, 다음 대통령선거를 약 1년 2개월 남긴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제안에 정국은 요동쳤고, 반응 역시 극과 극으로 나타났다. "이미 폭넓은 공감대를 얻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찬성 못지않게 "난데없이 나온 것으로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부정적 견해 또한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개헌은 블랙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만큼 민생을 살펴야 하는 지금으로선 적절치 않다"며 선을 그었던 대통령이었기에 이번 급작스러운 방향 선회를 게이트 난국을 돌파하려는 국면 전환용 승부수로 보는 시각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개헌 정국에 국민의 뜻이 얼마나 반영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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