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정부가 빚에 허덕이는 서민·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채무조정 개선 방안을 내놓자 기대와 우려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성실히 채무를 갚아가는 사람에게 자립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끌지만, 오히려 도덕적 해이, 형평성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란도 만만치 않다. 물론 정부는 엄격한 시스템으로 검증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 악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번 정부의 채무 부담 경감책은 2015년 서민금융 지원 강화와 올 1월 개인 채무조정 개선에 이어 세 번째다. 기금을 통해 연체이자 감면, 원금 일부 감면, 상환 기간 연장 등의 채무 조정을 받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정으로 중간에 상환을 포기하며 다시 빚의 늪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빚을 열심히 갚는다는 걸 인정받는 '성실 상환 기간'을 기존 12개월에서 9개월로 줄여 성실 상환자에게는 고금리 적금 가입, 소액 신용카드 사용 한도 상향, 사고나 질병 같은 불가피한 사유로 남은 빚을 갚기 불가능할 때 잔여 채무 감면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이런 감면 혜택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중증 장애인, 70세 이상 고령자 같은 취약 계층과 함께 일반 채무자에게도 주어진다는 데 있다.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채무액의 최대 90%를 탕감해 주기로 했는데 지금까지의 최대 60%를 상향 조정했다.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채무조정위원회가 소득 정보를 토대로 상환 능력이 정말 없는지 엄격히 파악한 뒤 금융기관 동의를 얻어 감면율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부작용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채무조정 혜택을 받지 못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착실히 한 푼 두 푼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자칫 인기 영합(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이미 알려져 있다. 올 2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257조 원을 넘는 천문학적 규모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34조 원이 늘어났다. 이런 가계부채의 허덕임 속에 서민·취약계층 채무자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곤궁은 더 심했고,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 역시 늘었다.

올 1~5월 신용회복위원회에 접수한 채무조정 신청자(신용회복 지원자)는 4만252명으로 1년 전보다 1262명이 늘었다. 이 가운데 연체 기간 90일 이상인 채무자로 원리금을 감면받는 개인워크아웃 신청자가 3만3638명으로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기업 구조조정 여파에 따른 인력 감축 등으로 빚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면서 올 채무조정 신청자가 10만 명이 넘어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 정부가 이르면 올 4분기부터 시행할 채무 경감책을 내놓았고, 연간 최대 23만3000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제도 시행에 들어가는 재원 역시 국민 혈세로 충당된다. 그런 면에서 더는 본인의 힘으로 채무를 갚지 못할 성실 상환자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가야 하지만 그 혜택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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