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서 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 열려

▲ 충북 옥천군 청산면 다목적회관에서 ‘동학농민혁명과 충청도 옥천’을 주제로 동학농민혁명 126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마친 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옥천=이능희기자]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골이 동학농민운동의 전국화를 이끌었던 본거지였다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됐다.

최근 옥천군 청산면 다목적회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126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동학농민혁명과 충청도 옥천’을 주제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임형진 경희대 교수는 ‘옥천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청산기포의 의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청산 ‘문바위골’은 1893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과 동학 지도부가 머물며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동학의 중심부”라면서 “1894년 9월 18일 해월이 이곳에서 동학교도들의 봉기를 촉구한 ‘총기포령’을 내려 동학혁명의 기치와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또 “총기포령은 차원이 다른 혁명이었다”며 “일원화된 조직으로 통제됐고, 이후 호남의 지도자들과 기타 지역의 동학 지도자들의 화합과 교류로 민족 통합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학혁명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기념하는 몇 안 되는 사건이다”며 “동학의 전국화·세계화·미래화를 주장한다면 혁명이 전국화된 청산 기포령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정을경 충남역사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갑오군정실기 기록을 바탕으로 ‘옥천지역 동학농민혁명과 진압군 활동’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옥천은 최시형이 머물렀던 동학의 시작 지점이자, 일본군에 패배한 공주 우금치 전투가 벌어질 때 충남·전라도 동학군이 집결하는 등 동학의 끝도 함께한 지역이다”며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원은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청산면 한곡리 일대는 수만 명의 교인이 집결했고, 문바위에 설치된 대도소(大都所)는 동학도의 출입인 빈번했다”며 “최시형이 있던 이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인들이 세력을 넓혔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최민자 동학학회 회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를 거론하면서 그 계기가 됐던 옥천지역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않았다는 점은 애석한 일이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최시형의 행적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에서 옥천지역의 역할과 활동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새로운 연구성과를 동학 학보에 특집으로 게재하고 단행본으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순표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장은 “옥천은 동학의 핵심 지역으로 사업화와 연구가 절실하다”며 “동학농민혁명 옥천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연례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옥천 동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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