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국내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다시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상습적인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 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가 당한 폭행은 영화 속 범죄 집단의 그것과 다름 아니었다.

최 선수의 사망 후 그의 동료 선수들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증언한 가해자들의 행동은 정말 이게 스포츠 선수들이 맞나 싶게 한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 선수와 동료들은 감독과 팀닥터 뿐 아니라 주장 선수의 폭력과 폭언을 상시 견뎌야 했다.

훈련 중 실수하면 선수의 멱살을 잡아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내리라며 협박하고, 감기·몸살로 훈련에 불참하면 각목으로 때리기도 했다.

최 선수의 경우 집단 따돌림을 당했음은 물론 휴대전화를 보며 울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았다.

관련 면허는커녕 운동처방사에 불과한 팀닥터가 치료를 하겠다며 신체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고, 최 선수에겐 "극한으로 끌고 가서 자살하게 만들겠다"며 겁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동료 선수들도 자신들이 당한 폭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고막이 터지고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맞았으며 맹장 수술 후 실밥도 풀지 않았는데 물에 들어가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 폭행과 폭언 사실 일체를 부인했다.

결국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날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7시간여의 회의 끝에 "고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내몰고 여러 피해자를 만든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과 장 모 선수를 영구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피해자 보호와 이같은 가혹 행위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이번 일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가해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직접적인 가해자들 외에 이를 방관한 기관의 관계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 선수는 생전에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경북체육회,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가혹 행위를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느 곳도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 문화와 이를 정당화해 온 성적 지상주의가 사라져야 한다.
문화예술계처럼 체육계도 도제식 훈련을 받는다.

선수 생명을 쥐고 있는 지도자의 눈밖에 나 운동을 지속하지 못 할까봐 선수들은 가혹 행위를 당하고도 참을 수밖에 없다.

체육계 전반에 걸쳐 인권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관리·감독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어김 없이 재발 방지를 외치고 있지만 지난해 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경우를 생각하라.

심 선수가 코치들로부터 폭력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히자 정부는 인권 침해 근절 대책을 내놓았으나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언제나 문제가 터지면 여기저기서 예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늘 공염불에 그친다.

하나 뿐인 목숨을 끊기까지 해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는 현 상황을 최 선수는 어떤 심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을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