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성명학 박사

 

[세상을 보며] 김형일 성명학 박사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장마는 낮이 가장 길고 태양이 가장 높다는 하지(夏至) 즈음에 고기압과 오호츠크해 기단의 현상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비가 내린다. 집안 공기가 눅눅해지고 외출 때마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고마움도 있다. 이 같은 소소한 일상보다 집중 폭우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자연의 존재감을 새삼 느낀다.

매년 이때 또 다른 폭풍전야가 있다. 바로 공직사회의 승진철이다. 정기 인사는 일 년 중 6월과 12월 두 번 심사를 통해 한 직급씩 올라간다. 후보에 오른 대상자들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면은 온갖 신경전이 오고 간다. 발표 이전까지 잔잔하고 고요함 속에 초긴장감이 맴도는 전쟁터 같다. 승진이 뭐라고 말이다.

지인의 소개로 사주 상담 받았던 40대 중반의 여성이 지난주 재차 방문하였다. 그 당시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설렘반 기대반으로 찾아왔던 모습이 어렴풋이 났다. 2년이 지난 금년 하반기 승진이 되지 않아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대학 4학년 9급 지방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에 합격하고 다음 해 3월 동사무소에 초임 발령을 받고 근무하였다. 같은 해 가을 7급 공개채용 시험도 합격한 그는 시청으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15년의 공직생활 동안 주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직원들과도 유대관계가 좋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지난 2019년 상반기 승진인사에 입사 동기가 먼저 5급 승진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사실 그때보다 힘든 것은 며칠 전 예비 승진심사에서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젖어있는 것을 보니 필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그가 일어나면서 전직을 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그녀는 소설과 동지 사이에 있는 대설(大雪)에 태어났다. 이때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는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하는 농한기다. 공직사회나 일반 직장인들도 한 해 동안 추진한 사업 평가와 예산을 마무리하고 다음 해 업무를 준비한다.

그녀는 한 겨울의 땅이 얼고 물이 어는 자월(子月)에 태어났다. 즉 일양(一陽)이 시작되는 때이다. 또한 월지 주변은 음토(陰土) 지지(地支)가 자리 잡고 있어 습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나 다행히 월간에 병화(丙火)가 떠 있어 따스한 기운을 갖는다. 그렇다고 한 여름 태양처럼 강열하지는 않다. 그의 사주자화상은 도장에 손잡이는 없고 이름만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매번 승진자 명부에 오르지만 최종적으로 승진이 되지 않았다. 상담실을 나서며 고개 떨구고 힘없이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어느 시인의 초조한 기다림은 괴로움이지만 느긋한 기다림은 즐거움이라는 시 구절처럼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면 가까운 시기에 손잡이 달린 도장의 물상이 들어올 것이다. 그럼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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