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 교수

 

[충청의 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오월의 연초록 신록은 매혹적이다! 투명한 움직임의 파장은 화사한 햇빛을 타고 하얀 빛으로 영혼 속에 부서져 내린다. 눈을 감고, 방금 전에 보았던 그 빛깔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는 이내 좌절한다. 순간으로 초록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인간의 인지한계를 훨씬 벗어나 있다. 눈을 감은 순간에 기억해 낸 것은 빛바랜 사진처럼 전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전체는 눈을 다시 뜬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지극히 당연한 놀람으로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보인다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정보를 획득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는 무의식의 기억을 통하여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고도 한다. 감각기관을 통하여 획득된 정보가 모두 인지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하여 획득된 정보는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할 수도 있지만, 인식이 일어나는 해석과정 중에서 선택되고 변형된 정보로 변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 두뇌의 인식과정에서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하는 정보의 필터링 기능이 작용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라 한다. 이러한 시대의 도래는 인공지능의 정체에 대하여 많은 흥미를 유발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과의 차이를 정보의 객관성의 관점에서 보자. 선별적인 정보를 인지에 사용하는 인간의 인지시스템은 감각기관을 통하여 획득된 모든 정보들을 적용한 인공지능보다 신뢰성이나 정확도 등에 있어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장치와 시스템이 장착된 자동차와 인간의 경주와 비교하면 유사할까? 예를 들어, 시각의 인지에서, 로봇은 카메라렌즈를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인지한다. 어느 하나를 특별히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피사체를 같은 가중치를 가지고 정보를 획득하고 인지의 정보로 사용된다. 이에 비하여 인간의 시각정보를 통한 인지과정은 인간의 부여한 가중치가 부여된 필터를 통하여 원하는 정보만 걸러서 보게 된다. 즉 관심영역 밖의 정보는 그저 흘려버린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사회에서 법정증거로 제시되는 많은 정보들 중에서, 사람의 기억이 제공하는 정보는 거짓말 탐지기의 영원한 고객이다. 그러나 시청각정보인 감시용 카메라를 통하여 얻어지는 시청각 정보는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정보를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정보저장소에 갖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이 정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필요할 때마다 불러서 재사용되기도 하고 자료는 다른 정보와의 진화를 통하여 새로운 정보로 업데이트되기도 한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되고 각색된다. 사실과 다르게 그 사실을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해석이 다양화하게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해석되기 이전의 원래의 정보는 확보된 형태 그 자체가 저장되어 보관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인지시스템의 한계이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인공지능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사실로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현재 인류가 이해하고 있는 인간에 정보는 모두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거대한 인간이란 존재의 빙산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가오는 시절에는 지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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