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1978년 충청일보 연재 장편소설 <촌놈> 출간

▲ 서재 겸 작업실인 몽함실에서 생각에 잠긴 강준희 선생.


1970년대 충청일보 연재 
장편 <촌놈> 42년만에 출간

지조·절개·신의 사라진
'개떡같은'세상에의 일갈

"정치·사회 등 엉망인 시대에 
젊은이들 바른 정신 가져야"

 

[충주=충청일보 이현기자] 충주 연수동 복도식 서민아파트 한켠 어초재(漁樵齋) 문을 열어 젖히며 꼿꼿한 백발신사가 카랑카랑한 소리로 맞이한다.

햇살 쨍한 거실에 몇 그루 키를 넘는 육필원고 탑이 솟았고, 김동리 선생 친필로 역경 '동심지언 기취여란(同心之言 其臭如蘭 :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도 같다)' 휘호와 좌우명 '청명(淸名 : 깨끗한 이름)' 서각이 걸려 있다.

서재 몽함실(夢含室 : 꿈을 머금은 방)에 마주앉은 이는 한평생 마음과 이름과 꿈을 닦는 선비작가 강준희(85)다.

그가 신인일 적, 본보에 연재한 소설 <촌놈>을 42년만에 책으로 엮었다.

 

-<촌놈>은 어떤 작품인가.

 "박정희 정권 말기 1976년 9월부터 3년 가까이 충청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현대문학'에 단편 <하느님 전 상서>로 오영수 선생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면서 본격적으로 글 작업에 매달리기 시작한 이듬해였다. 하루에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을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만 빼고 1주일에 엿새씩 실었다. 492회까지 연재했으니 원고지 4000매 정도 될 것이다. <촌놈>은 우직한 시골고라리(고집 센 시골 사람)가 뜻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맞서는 '멋진 가난한 부자'의 이야기다. 충주 산척면 송강리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초등학교)만 마치고 30리 밖 읍내에 땔나무를 해다 팔던 청년 석우진이 곤이지지(困而知之 : 애써 공부해 깨달음)로 독학해 국회 출입기자가 되고, 복마전 같은 정치세계에서 돈과 명예의 유혹과 폭력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지조와 기개를 지키며 앞길을 열어간다. 그가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전후 1년여간 겪는 사건들이 담겨 있다. 원제는 <이단(異端)의 성(城)>이었는데 연재 도중 <촌놈>으로 바꿨다."


-작품의 기획 의도는.

"한국의 혼, 한국의 정신이 사라져 간다고 걱정들 한다. 선비라면 마냥 케케묵은 것으로만 생각해 시대에 맞는 선비정신을 그려보려 했다. 다섯 권을 한결같이 관류하는 맥은 세상의 어떤 유혹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싸워 나가는,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신념을 갖고 살자는 선비정신과 지조, 개결, 정의, 청렴이다. 주인공 석우진은 좌우명 '청명(淸名 : 깨끗한 이름, 이름을 더럽히지 말자)'과 사훈 '하늘 무서운 줄 알자'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 왜 강준희라는 사람은 매일 지조니, 절개니, 신의니, 그런 것만 이야기하느냐 하지만 '개떡같은' 세상, 그런 게 없어진 세상이니까 그걸 되살리자는 것을 신념처럼 생각하며 어느 작품에나 깔고 있다. <촌놈>도 마찬가지다. 참 망가져가는 세상에 문단의 선배 나이가 됐으니 잘 쓰고 못 쓰는 것을 떠나 그런 마음가짐을 남겨 두고 싶다."


-대체 선비정신이 뭔가.

"한국의 정신이 선비정신이다. 고구려 때는 상무(尙武)정신, 신라 때는 화랑정신, 조선조 때는 선비정신이 있다가 가뭇없이 소멸돼 사라졌다. 이것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젊은이들이 영어에만 몰두하고, 효도사상이나 선비정신을 우습게 여기니 안되겠다 싶어 선비정신을 부르짖은 것이다. 아직도 미국은 개척정신이 살아 있고, 영국은 페어플레이와 기사도정신, 젠틀맨십이 맥맥이 흐르고 있다. 또 중국은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을 부르짖었고, 일본은 완장정신(頑張精神)을 국시처럼 내걸고 경제대국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상무정신도 화랑정신도 선비정신도 없어진 지 오래다. 한 사회와 한 나라가 어떤 정신을 가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한국은 바로 선비정신이다. 정치·사회·경제 모두 엉망진창인 시대에 젊은이들이 똑바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 3년간 매일 원고 마감은 보통 일이 아닌데.

"당시 충주에 거주했는데 마땅한 통신 수단이랄 게 없어서 충청일보 지사가 기사 원고를 보낼 때 같이 보내고, 급하면 우편 지급(일반 우편보다 더 빨리 전송하는 특별 우편)으로 보내든가, 정 급하면 내가 직접 본사까지 가져가곤 했다. 나중에 팩시밀리가 보급돼 팩스로 원고를 보내게 됐지만, 당시엔 참 애를 먹었다. 그래도 마감을 어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루는 담당 기자가 '선생님 너무 정직합니다. 신문사들은 원고 마감이 제때 되지 않아 담당자는 물론, 심지어 편집국장이 쫒아가 원고를 받아오는데 선생님은 또박또박 원고를 주시니 너무 정직하십니다'하고 말하더라. 미리미리 써서 보내고, 정 안되면 직접 차를 타고 신문사로 찾아가 원고를 넘겼으니 담당자 속은 안 썩였다."


-탈고 후 42년만에 출간하는 소회는.

"등단 후 첫 번째 신문 연재작이었고, 신문 연재작 중 가장 긴 작품이기도 하다. <촌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대훈 한국교통대 교수의 노고가 참으로 컸다. 작품이 도사리(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 글이어서 세상에 나가 자식 노릇 못할 것 같기도 했지만, 엄청난 출간비를 감당할 수 없어 40년 넘게 캄캄한 궤짝 속에 처박아 둔 원고였다. 이 교수가 빼앗다시피 가져가 컴퓨터로 쳐 가지고 왔고, 여섯 번을 다시 교정을 봤다. 그 후로도 3~4년 처박아 뒀는데 내가 중학 과정을 가르친 이정문 군(정문사 대표)이 어느 날 부르는 듯 찾아와 원고를 가져갔고, 1년 가까이 준비해 책이 나왔다. 나오니 걱정이 태산이다. 내 생각을 해서 제자가 출간을 하긴 했지만, 워낙 책이 안 읽히는 시절이라…" 
 

▲ 강준희 선생이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선 육필원고 무더기에서 옛 원고를 꺼내 보고 있다.


△ <촌놈> 줄거리

 스물 넷 석우진은 고향 충주 산척면 송강리에서 땔나무를 읍내에 내다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는 촌놈이다. 국민학교를 겨우 나와 홀로 책읽기에 몰두해 온 우진은 우연히 언론사 사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해 300여 대졸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합격, 국회 출입기자가 된다. 의원들의 인물평을 담은 첫 보도부터 주목받으며 사장 눈에 든 그에게 상사의 시기와 린치, 의원들의 돈봉투 등 온갖 위협과 유혹이 엄습한다. 우진은 굴하지 않고 초심을 오롯이 지켜간다. 그러나 3ㆍ15부정선거에 이어 4ㆍ19혁명의 격랑이 우진의 앞길에도 거센 파도를 몰고 오는데…(후략).

▲ <촌놈> 1~5권 표지.


△ 강준희 연보

1935년 충북 단양서 태어남
1947년 가세 기울어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
1953년 땔나무 져다 팔며 독학
1957년 잡지 농토에 자전소설 <인정> 발표
1962년 음성서 엿장수하며 습작
1963년 충주서 막노동, 풀빵장수, 청과장수
1966년 신동아 공모에 <나는 엿장수외다> 당선
197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하 오랜 이 아픔을> 당선
1975년 현대문학 <하느님 전 상서> 추천 등단
1976년 충청일보 <촌놈> 연재
1980년 소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출간
1982년 충청·경인·강원일보에 <개개비들의 사계> 동시 연재
1984년 충청일보에 <아 어머니> 연재
1988년 수상집 <바람이 분다. 이젠 떠나야지> 출간
1996년 자전소설 <이카로스의 날개는 녹지 않았다> 전 3권 출간
2008년 <강준희 문학전집> 전 10권 출간, 美 하버드대 도서관 소장
2010년 한국선비계승회 초대 회장
2011년 강준희 문학비 건립
2015년 소설집 <서당 개 풍월 읊다> 출간
2017년 <강준희 문학상 수상 작품집> 출간
2020년 소설 <촌놈> 전 5권 출간
 

▲ 좌우명 '청명' 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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