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 칼럼] 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그녀를 주목한 것은 독일기자의 얘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때다. 대통령과 동행해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다. 외신기자는 당시 어느 여성장관을 지목하며 독일의 리더라고 했다. 그냥 그렇게 알았다. 그녀는 그때 독일의 가족여성부장관이었다. 그녀는 이후 2009년 독일 노동부장관에 기용됐다. 외신은 당시 그녀를 ‘철의 여인인 영국 대처수상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했다. 소신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뛰어난 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013년에는 독일 첫 여성 국방장관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가 대처와 다른 점은 여성과 가족을 중시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2남5녀의 엄마였다. 스스로 독일은 저출산이 문제라며, 7명의 자녀를 키워왔다. 그가 지난 16일 차기 EU(유럽연합)의 행정부수반인 EU 집행위원장에 뽑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독일국방장관이다. 그녀는 우리로 치면 1958년 개띠다. 그는 첫 여성 위원장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사회적 경험을 봐도 한참 일하기 좋은 나이다.

그녀가 인준되자 EU 회원국들이나 뉴욕타임즈 등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대서특필하면서도 이상할게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저출산국 독일에서 7자녀를 기르며 유리천장을 깨고 ‘유럽의 대통령이 된 것을 당연시한다. 많은 나라에서 자국 인사처럼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위원장에 선출된 자리에서 그녀는 원고 없이 계획을 밝혔다. 오는 2024년 10월31일까지 임기 5년간 해낼 목표였다. 그녀는 첫마디에서 “실천 가능한 일을 하겠다”며 장밋빛 공약을 경계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단합되고 강한 EU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짧지만 강한 어조로 “EU에서 법과 원칙, 그리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회원국 대표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폰데어라이엔은 이어 시급한 현안해결을 꺼내들었다. 영국의 EU탈퇴(브랙시트) 문제를 제일먼저 해결해야할 일이라고 꼽았다. 영국이 사전에 아무런 협의 없이 EU를 떠날 ‘노딜 브랙시트’를 해결하지 않는 한 EU가 큰 혼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EU이 최대현안인 기후변화대응에도 세심함을 보였다. 오는 2050년까지 유럽에서 자동차배기가스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EU와 미국 간에 꺼내기 거북해하는 통상문제를 세 번째로 언급했다. 그녀는 미국과의 에어버스 보조금문제를 비롯 자동차관세, 철강관세도 덮어 놓고 가면 곤란하다고 했다. 미국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의 협상단을 꾸리는 등 우호적 관계 유지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이것으로 그칠까. 그는 그의 경험을 토대로 저출산 해소 문제도 꺼냈다.7남매의 엄마이자 산부인과 의사에서 국방장관의 막중한 일을 해낸 경험도 소개했다. 남편 하이코도 의대교수이자 의료기업의 대표다. 독일에서는 여성이 둘째를 낳고 직장에 복귀하는 예는 5% 남짓. 그녀는 노동부장관 때 당내반발을 물리치고 남편들은 의무적으로 2개월 육아유급휴가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EU국가가 하나가 되어 저출산을 해결하자는 의도였다.

폰데어라이엔의 EU 집행위원장 선출얘기를 듣고 몇 해 전 독일기자가 ‘그녀는 리더가 될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를 중앙정치무대에 세운 것은 메르켈 총리다. 메르켈 총리는 그녀의 인물 됨됨이는 물론 능력을 높이 샀다. 메르켈정부에서 가족여성청년부장관, 노동부장관, 그리고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일해왔다. 허영심이 없는 신용국가, 능력이 통하는 나라의 독일에서는 리더를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메르켈 총리에게 반기를 든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독일 기독민주당(CDU)소속인 폰데어라이엔은 당내 개혁파다. 아니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끝까지 아니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기업 내 여성임원 할당제 도입과 직장여성을 위한 보육시설확대, 최저임금제도입 등을 이뤄냈다. 메르켈을 위협하는 그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래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는 이념과 진영을 떠나 미래의 한국을 맡길 리더가 있는가. 선거 때 표나 얻기 위해 머리 조아리고 사탕발림인줄 우린 알면서 찍지 않았을까.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10년 뒤, 50년뒤 ,100년뒤 한국의 미래에 대해 실력을 쌓는 이가 있느냔 말이다.

대통령이 됐든, 국회의원이 됐든 마찬가지다. 국민들 앞에서 번연히 약속해놓고 당선된 뒤 슬그머니 ‘내가 언제?’하는 전. 현직 대통령들의 한심스런 국민 우롱을 우린 언제까지 참아야하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은 다 안다.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서 공개적으로 약속해야하는데도 ‘상황이 달라졌다’는 핑계로 뭉개버렸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숱한 거짓말을 했으니 논제로 삼지 않겠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집권 2년 차에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던 그 약속도 거짓이었다, 노태우· 김영삼(YS) ·김종필(JP)의 3당야합할 때 내각제 합의도 허언이었다. 그리고 김대중(DJ)전 대통령과 JP간의 내각제공동정부수립약속, 이도 파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정부의 ‘줄푸세’ 공약포기와 문재인 대통령의 공직자5대 검증원칙 및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시대 공약파기등도 똑같다. 이게 우리들의 대통령이자 권력자의 모습이다. 이를 문제시하면 대통령들은 ‘내편 아닌 상대편’으로 규정해 매몰찬 공격도 씁쓸한 역사다.

국회의원들의 허상은 말로 다할 수 없다.YS정부 때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 시작되자 국회는 마지못해 정치개혁을 외쳤다.1990년대 초 중반 쯤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와 고비용 저효율 정치문화 청산이란 그럴듯한 계획이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회개혁은 고사하고 놀고먹는 국회는 그대로다.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면 그들 모두 “예”라는 대답한다. 어떤 이는 한수 더 떠 ‘정치개혁은 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당사자는 빼고 다른 정치인들에게 개혁의 메스를 대라는 것이었다. 여야는 이렇게 주고받으며 국민의 눈을 가리며 우롱하는 것이다.

시·도지사, 시·군·구청장과 지방의원들 모두 똑같다. 선거를 앞둔 선심경쟁과 말잔치, 헛 공약과 장밋빛 정책만 풀어놨지, 우리 손에 잡히는게 하나도 없다. 선거가 끝나면 콧대높이고, 거드름과 국민알기를 발톱에 낀 무엇 알듯 하면서 스스로 한국리더라고 외친다.

기업이나 자영업자, 병의원 할 것 없이 세금으로 죄다 바치게 하고, 그 돈은 어디에 쓰는 가. 국세든 지방세든 세금 때문에 외국에 가서 살겠다는 주위의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 돈의 씀씀이는 누가 짜고, 누가 감독하며, 어디에 쓰고, 누가 결산하는가.

없는 돈 짜내어 세금으로 바쳤으면, 헛되이 쓰지나 말아야할 텐데 책임자도 없다. 선거에서 사람만 바뀌면 실책이 가려지니까 말이다. 예컨대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지어놓고 텅텅빈 세종시 등 화려한 도시들을 가보라. 빈 사무실이 즐비한데도 사람은 없고, 2달도 안되어 폐업하는 상가가 수두룩한, 껍데기만 남은 유령의 도시들 말이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또 그 공약이 벌써 쏟아진다. 정부부처 세종으로 옮기고, 국회의사당 옮기고, 청와대도 옮기고, KTX 오송역 만들고...이렇게 말이다. 지난 2002년 당시 민주당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건설의 꿈’이 다시 나온다. 무려 20년째 추진공약이 나오고, 상대편 정파는 안된다고 맞서 도돌이표 선거용 공약이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세종시 얘기가 나오니 입을 열었다 그는 “그거 내년 4월 총선 때 공약으로 또 써먹으라고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확답을 줄 듯 말 듯 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속으로는 ‘뭐 이런 사람이 이 사회에 리더냐’고 욕해주고 싶었다.

곳곳마다 혁신도시니, 혁신클러스터니,무슨 도시니 해서 막대한 예산을 세워 주민을 유혹하기 바쁘다. 자신의 돈이 아니니 마구 선심성 공약은 제시한다. 나라보다 자신 온갖 특혜누리는 국회의원 시도지사자리에 가보겠다는 계산이다. 나라가 어찌되던, 한국의 미래가 어찌되던 상관할 바 아니듯이 말이다. 그게 우리의 리더라는 작자들이다.

수백, 수천억 원씩 들인 온갖 SOC사업들이 무용지물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을 잘못세우고, 잘못 집행했다면 응당 책임을 물어야하는데 그렇지 않다. 측근이나 실세들이 크든 작든 어느 조직이든 횡포를 부리니 나라꼴이 우습게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일이다. 그게 언론이다. 지자체든 어디든, 권력자든 비권력자든 불의를 감시하고 비판해 정의와 공익을 추구하는 게 본령인데 거꾸로 가는 언론이 상당수다. 나랏일이, 지자체의 잘못을 국민을 대신해 묻고 갈등을 중재해야할 그 언론이 비판기사를 막고 있다. 한 언론이 지자체와 그 지자체장의 부조리와 문제를 지적하면 지자체장이 해명하기보다 벌떼처럼 출입기자들이 나서 비판언론을 음해하는 이 못된 나라.

이는 취재를 명분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이비 기자보다 더 나쁘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비판이 없는 언론, 지자체에 빌붙어 방어벽인 언론을 ‘기래기’라고 한다. 부끄럽다. 그러니 귀 두 개가 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현실이다. 이들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만든다.

이렇게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가 난무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성경에서나, 세계사에서 보듯 ‘지금 밖에 못보거나, 자신 이익만 쫓는 권력’은 필히 폐망했다. 우리 한국사회는 암담해 보인다. 이보다 더 어려워도 이겨냈다는 긍정론자도 많다. 그러나 정치, 경제, 국방, 외교, 교육, 언론... 어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곳이 있을까.

서로 10년뒤, 20년뒤...미래의 희망과 기대를 말해야할 때에 이 낙심과 불안만 가득한 이 현실, 권력자들은 다시 배워야한다. 통일을 이루고 오직 미래의 번영으로 가는 이들 선진국에서 겸손히 배워야 한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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