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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校歌의 무거움

기사승인 2019.06.27  16: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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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최근 ‘친일 교가’를 없애고 새 교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강점기 때 친일행위를 했던 작곡가들이 작곡한 교가를 교체하자는 것이다. 그 대상은 주로 김동진, 이흥렬, 현제명, 김성태 등의 곡들이다. 몇몇 학교에서는 교가를 바꾸기도 했다.

친일 교가라면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개방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교체 논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 교사, 졸업생, 지역주민 등 학교 구성원 당사자들의 폭넓은 논의와 합의를 거쳐 진행하는 것이 합당하다. 기한을 정해 놓고 그 때까지 교가를 교체하겠다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

이 기회에 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며칠 전 충북교육청에서 주최한 ‘미래교육 100년 학교문화 개선 정책토론회’에 참여했다. 토론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교가가 있었다. 배재학당(배재중, 배재고, 배재대)의 교가였다. 배재학당 교가를 처음 듣게 된 것은 수년 전 서울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였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 무궁 하도록…” 배재학당 교가는 독특하고 낯설었다. 이런 내용의 교가가 있다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가가 생각났다. 내 모교의 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과 조국의 부름을 받아/…/ 광활한 ○○벌 ○○봉 위에…” ○○산, ○○강, ○○벌. 다른 학교 교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불러온 교가에는 늘 산과 강, 조국과 역사, 미래 등이 등장한다. 교가는 늘 무거운 존재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네 교가는 공급자 중심이었다. 거대담론은 있지만 주 고객인 학생들의 관점은 없다. 교가를 부르는 학생은 그저 계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배재학당 교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산도 없고 ○○강도 없다. 조국도 없고 역사도 없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가 반복되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 교가였다. 교가의 가사를 쓴 사람은 1885년 배재학당을 설립한 미국의 선교사 아펜 젤러였다. 교가를 바라보는 아펜 젤러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근본부터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세에 붙인 외국곡 멜로디는 따라 부르기도 쉬운 편이다. 가사도 편하고 멜로디도 편한 교가. 그래서인지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도 수시로 배재학당 교가를 흥얼거린다. 배재학당 졸업생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의 교가에서 육중한 무게를 확 덜어내면 어떨까. 내가 왜 배재학당 교가를 따라 부르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친일 작곡가 교가에 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우리 교가의 존재 방식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함께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는 교가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교가에 너무 무거운 이데올로기를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충청일보 webmaster@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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