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북한 목선이 우리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무려 133㎞, 출발지 경성에서 직선으로 500여㎞나 항해, 또는 표류해 동해 삼척항에 배를 댈 때까지 군과 해안경찰이 전혀 몰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아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국민들에게 은폐하고 거짓보고를 한 국방부의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여기에 해당 부처를 관리감독해야 할 청와대가 깊이 관여 내지 동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속속 알려지고 있어 국민들에게 분노와 함께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사건은 집권층과 군·경의 안보에 관한 정신무장 해이에 따른 전력의 약화, 책임감의 실종 등 허다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현 정부 들어서서 성급하게 추진해온 남북화해와 평화체제 추진이 국가안보 지형에 끼친 원초적 불안요소들이다. 그 점에서 역설적 긍정효과를 준 가져오기도 했다.

진상을 은폐하기 위한 국가 기관들의 묵시적 담합과 거짓말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선 경계의 실패는 심각한 상태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명언은 군 지휘관이라면 늘 깊이 명심하고 있어야 함에도 우리 군 지휘관은 그렇지 못했다.

북한 목선이 NLL을 넘어 삼척항에 정박할 때까지 사흘동안 133㎞를 거쳐오는 동안 막강한 전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군·경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계의 실패다. 군은 ‘파도가 북한 어선보다 높아서’, ‘철선이 아닌 목선이라서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라는 역시 거짓 변명만 늘어놓았을 뿐, 왜 몰랐는지에 대해선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수 훈련을 받은 북한군이 작은 목선 10여척을 타고 50명만 해안으로 침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나마 적군의 침투를 막아주던 철책마저 제거된 해안지역 거주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더 걱정이 커졌다.

경계의 실패는 정신무장이 해제됐기 때문이다. 눈을 부릅뜨고 적의 침투를 막겠다는 각오가 있었다면 첨단 레이더가 없어도 누군가는 발견해냈을 것이다. 북한에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우수한 장비를 갖춘 해군과 해경에서 아무도 못 본 것은 지례 평화무드에 젖어 주적 의식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멀쩡한 GP를 허물고, 접경지대에 대한 정찰 비행과 훈련조차 금지시킨 남북군사합의서 체결 후유증이 이렇게 크다. 그런데도 국방개혁 2.0에 의해 구조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방부의 거짓 브리핑을 이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조 내지 공모한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의 행태는 또 뭔가?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청와대가 최소한 방조한 것이다. 브리핑 전에 국방부는 지하벙커에서 작전회의까지 했다고 한다.

특히 귀순을 알고 있었지만 북한이 반발할 것을 우려해 알리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국민 자존심을 손상시킨다. 북한이 귀순자를 돌려보인라고 요구하면 화해 분위기를 위해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인가? 북한 눈치 보느라 지레 보도통제를 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여전한데 벌써부터 이렇게 저자세가 된 것도 현 정부의 졸속적인 대북화해 정책의 역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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