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묻지마 범죄'가 또 발생했다. 지난 17일 한 40대 남성의 '묻지마 칼부림'에 고요하던 새벽의 아파트는 핏빛 공포로 물들었다. 이날 새벽 화재를 피해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온 주민들을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낯선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었고, 심지어 목숨도 잃었다. 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흉기 난동으로 숨진 피해자는 70대 남성 1명, 60·50대 여성 각 1명, 19·12세 여학생 등 모두 노인, 여성, 어린이였다. 이 남성은 미리 준비한 흉기 2개를 사용해 여기저기서 대피하는 주민들을 향해 휘둘렀다. 

더욱 놀랍고 안타까운 점은 범인이 이미 1년 전부터 수차례 난동을 부리고 주민을 위협·폭행했는데도 경찰이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범인의 바로 위층에 살던 A양은 평소에도 이 남성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위협을 받아  집 앞에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지만 이번에 결국 흉기에 찔려 숨졌다. 그는 또 이웃집에 오물을 투척하고 욕을 하거나 폭행하는 일들이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며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당시 경찰이 적극 대처를 했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은 이번 참사에서도 이어졌다.

불특정인을 상대로 벌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달 서울 한 편의점에서 40대 남성이 목검과 흉기를 휘둘러 시민 2명이 다친 사건이나, 지난 해 10월 경남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50대 여성을 때려 숨지게 한 일도 이번 사건과 다르지 않다. 앞서 지난 해 8월 새벽 충북 증평에서 50대 취객이 환경미화원에게 담배 1개피를 요구하다 안 준다고 묻지마 폭행을 가한 일도 있다.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2013년 54명, 2016년 57명, 2017년 50명 등 연평균 50여건 발생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묻지마 범죄 절반 이상은 살인과 상해 사건이었다. 한 번 발생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를 두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생긴 '병리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음에도 이를 적절하게 해소할 장치나 수단이 없어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묻지마 범죄의 특징이다.

사회가 개인화하면서 '공동체 정신'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대상을 향한 범죄여서 대응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를 줄이려면 임금체불 등 개인의 불만을 유발하고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을 줄이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또한 사회 불만을 이유로 범행했다고 해서 그 죄를 가벼이 봐서도 안 된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통한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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